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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에게 가까워지려는 협력: 핀란드 미디어 교육
핀란드 미디어교육에 참여하는 주체들

시민에게 가까워지려는 협력: 핀란드 미디어 교육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대학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medialiteracynetwork@gmail.com)

 

뉴스레터 코너에 핀란드 미디어 교육을 소개해 달라는 전미협 연락을 받고 겁이 났다. 지난해 여름 같은 주제로 전미협 회원센터 스태프 앞에서 발표했던 기억 때문이다. 무슨 말을 했더라, 뭔가 약속한 건 없었나, 나는 모두들 열심히 지내셨을 지난 1년 동안 새롭게 뭔가를 쌓아뒀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생각이나 이야기를 꺼낼 준비가 되었나. 작년 발표 후에 전미협 김수연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청중 소감을 뒤늦게 찾아 읽었다. “더 세부적으로 구체적이었으면 좋겠다” “미디어교육 정책 관련해서도 듣고 싶다” “3박 4일 함께 숙식하며 심도있게 토론하고 방안을 모색하고 싶다”와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정말 코로나19 이전에는 모이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편안했다. 그런 날이 다시 올까. 이런저런 생각을 거쳐, 핀란드 미디어교육 현황을 뉴스레터에 적는다.

 

핀란드 미디어교육의 지형과 주체

 

핀란드 미디어교육은 어떤 모습으로 이뤄지고 있을까? 교육 환경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나라이긴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한눈에 그려내긴 어렵다. 무엇보다도 일부 단편적인 사례가 이곳 미디어교육을 대변하진 않는다는 것을 최근 들어 느낀다. 다만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큰 틀에서 학교와 사회 미디어 교육의 구조를 가늠해볼 수는 있을 듯하다.

 

편의상 미디어교육을 구분하는 방식을 참고하면, 핀란드에서도 크게 학교와 사회분야로 나눠 미디어교육이 이뤄진다. 다만 ‘학교 미디어교육’이나 ‘사회 미디어교육’ 이라는 말이 통용되진 않고, 두 영역 간의 경계도 희미하다. 경계가 희미하다고 쓰는 이유는 양쪽에 속한 기관과 단체가 굉장히 협력적으로 미디어교육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핀란드 교육부에서 주도하는 프로젝트의 경우도, 예산은 부처에서 나오지만 교육 프로그램이나 자료 개발에는 교사와 연구자, 전문가가 함께 참여한다. 아예 예산지원 선정 단계에서 의무적으로 여러 분야 당사자로 운영진 혹은 연구진을 구성하도록 조건을 거는 경우도 있다.

 

2020년 현재 핀란드 미디어교육의 지향점은 ‘모두를 위한 미디어교육’(media education for all)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 모두가 기본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갖추는 일은 개인의 기본권, 인권, 삶의 질, 직업선택의 자유 등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이는 교육의 기본적인 방향과도 맞닿아 있어, 미디어교육의 대상 범위 또한 기존보다 위아래로 넓어졌다. 0세부터 6세 사이 영유아기, 그리고 60대 이상 노년층까지 모두 미디어교육의 대상으로 삼는다. 달리 표현하자면, 연령대에 맞춘 미디어교육 평생학습(life-long learning)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여전히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영역은 초중등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학교 안과 밖의 미디어교육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향점은 평생교육이지만, 그 중심에는 기본교육 혹은 공교육을 둔다.

 

또한 정부가 중앙집권적인 기구로써 모든 것을 결정한 뒤 내려보내는 하향식 정책 문화 대신, 현장의 목소리를 파악해 국가 단위로 발전시키는 상향식 문화가 정책 결정 과정에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디어교육 특성상 다양한 관계 기관과 시민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정부 기관 또한 그 협력에 기여하는 곳 중 하나로 위치를 둘 뿐 특정 이념, 교육 내용, 방식 등을 강요하거나 독점하지 않는다.

 

이런 미디어교육 지형에서 이뤄지고 있는 사례들 가운데 전미협에서 그간 해온 미디어교육과 접점을 찾을 수 있는 ‘학교 영화 주간’(Koulujen Elokuvaviikko) 프로그램과 청소년 활동가 대상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학교 영화 주간 (Koulujen Elokuvaviikko)

 

‘학교 영화 주간’은 핀란드 북부 중심도시 오울루(Oulu)시에 있는 문화센터 발베(Valve) 활동가들이 시작해 전국으로 퍼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프로그램이다. 1987년 문화센터이자 청소년 센터로 운영을 시작한 발베는 2007년 재공사를 통해 소극장과 영화 상영관, 전시관 및 워크숍 공간을 갖춘 종합 문화센터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발베 영화 학교(Valve Film School)를 운영하는 동시에 학교와 협력해 영화 주간 프로그램과 미디어 교육을 제공해왔다. 매해 9월이나 10월 전국 여러 학교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수업을 진행한 뒤, 결과물로 나온 학생 영상과 영화를 함께 관람한다.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온라인 영화상영을 진행했고, 전국에서 18만 명 가까운 아동과 청소년이 영상을 관람했다.[1]

 

오울루(Oulu)에 있는 문화센터 발베(Valve). 100년 된 건물을 재건축했다. 극장과 영화관, 전시관, 워크숍 공간 등이 있다.

출처: 오울루시 관광청 Visit Oulu. https://visitoulu.fi/tuote/kulttuuritalo-valve-4/

 

‘학교 영화 주간’은 발베(Valve)가 운영해온 각종 영화와 영상 제작 수업을 학교 수업과 연계해서 확대한 캠페인으로,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 핀란드 고전 영상 활용 수업, 비디오카메라 워크숍 등으로 이뤄져있다. 코로나19로 영화 관람은 대부분 온라인 상영으로 대체되었지만, 영화 관람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종합적인 문화예술 활동으로서 영화관 방문과 영화 관람 기회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핀란드 고전 영상 활용 수업과 비디오카메라 워크숍은 초중등 교과목과 연계해 운영하는 미디어 교육이다. 탐색(이론), 체험(관람), 창작(제작) 등 세 단계로 수업을 구성하되, 초중등 교과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요소를 강조했다. 국가교육과정안에 포함된 핵심역량과 연계해, 교강사들이 참고할 수 있는 수업지도안을 예시로 제공한다.

 

예를 들어 과학 수업에서는 스마트폰이나 타블렛PC로 밖에 있는 식물이나 열매 사진을 영상으로 5초가량 아주 가까이 클로즈업 촬영하고, 다음 장면에서는 카메라를 피사체에서 서서히 뒤로 물러 떨어져 식물과 주변 환경이 모두 나오도록 풀샷(full shot)을 촬영한다. 모듬별로 서너 개 식물을 촬영해 모아오면 수업시간에 클로즈업을 보고 무슨 열매인지, 어떤 식생에 자라는지를 맞춰보는 퀴즈용 자료로 사용한다. 기본적인 촬영 기법은 ‘학교 영화 주간’에서 제공하는 영화 리터러시 교재나 자료를 참고해 익힐 수 있다. 학생들은 어떤 장면을 촬영하고 또 어떻게 편집하는지를 익히는 방식으로 영상 메시지의 효과와 전달력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또한 스토리텔링, 소통과 배려, 미디어 재현, 제작 구조와 윤리 등 비판적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를 수도 있다. 참고로 핀란드의 ‘학교 영화 주간’은 지난 2월 뉴스레터 <프랑스의 작은 영화관들>에서 전은정 선생이 소개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중심에서 발전시킨 유럽 영화교육 프로젝트 씨네에드(CineEd)의 참여 프로그램이기도 하다.[2]

 

청소년에게 메지시를 잘 전달하려면?


청소년 활동가 대상 미디어 교육으로 소개하는 사례는 헬싱키시를 중심으로 국가에서 제공하는 청소년 활동가 대상 디지털 미디어 교육 기관 베르케(Verke: https://www.verke.org)다. 베르케는 청소년센터(youth center)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여러 활동가와 교육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핀란드의 청소년센터는 학교 안과 밖의 청소년이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왔다. 시내 중심가 접근성 좋은 곳에 자리잡은 공간에서 청소년들은 영화 관람이나 보드게임, 잡지, 소모임, 각종 참여 프로그램 등을 즐길 수 있었다. 핀란드에서는 이런 센터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청소년 지도’ 혹은 ‘청소년 사업’을 청소년 활동(youth work)이라는 표현으로 정의한다.

 

핀란드의 여러 기관과 지자체가 청소년 활동가 미디어교육에 주목한 이유는 청소년의 미디어 이용 행태에 따라 또래 문화와 의사소통 방식이 급변하고, 이에 따라 청소년 활동가(혹은 지도사)들이 겪는 어려움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 공교육이 잘 되어 있더라도, 핀란드에서도 학교 밖 청소년 문제와 방과후 청소년 여가 문화는 중요한 사회 현안이다. 최근에는 지자체 예산난으로 일부 소도시의 청소년센터가 문을 닫는 문제도 있었다. 코로나19도 큰 영향을 줬다.

 

이런 상황에 청소년 활동가들은 청소년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을 발굴한다. 온라인게임을 하는 청소년과는 트위치(Twitch)나 디스코드(Discord)로 소통하고, 인스타그램(Instagram)과 틱톡(Tiktok)으로 효과적인 청소년 대상 캠페인 방법도 모색한다.[3] 모바일 영상과 각종 짤(meme) 활용은 필수적인 기술이 되었고, 이런 방법으로 인터넷에서 청소년들과 대화하는 방식이 청소년과 활동가 모두에게 필요하게 되었다. 메신저인 텔레그램(Telegram)이나 왓츠앱(WhatsApp)을 통해 비밀리에 이뤄지는 불법적인 행위가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안전에도 위협을 줄 수 있는 점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특히 최근 국내에서도 문제가 된 성착취비밀대화방과 같은 사건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활동가들은 경찰을 포함한 수사기관과도 직접 연락하면서 활동한다.

 

베르케에서 제작한 틱톡 활용법 영상 / 출처: 베르케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WHmdTZbp-ro

 

베르케는 매년 여름 청소년 활동가 및 교육자, 전문가, 연구자가 모이는 소셜미디어 캠프 (SOME CAMP)를 주최해왔다. 전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올해 교육에서는 공영방송 윌레(Yle)의 1030세대 대상 채널 YleX 음악 매니저 겸 DJ 로 활동 중인 타피오 하카넨(Tapio Hakanen)이 어떻게 기획해야 청소년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지를 주제로 강연한다.[4]

 

2019-2020년 핀란드 미디어교육에서 일어나는 논의


지난 2019년과 2020년 핀란드 정부는 미디어 교육을 정책적으로 체계화 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핀란드 교육문화부가 <핀란드의 미디어 리터러시: 국가 미디어교육 정책>이란 제목의 정책안을 출간했다. 이 정책안은 앞서 2013년에 나온 정책 가이드라인 <좋은 미디어 리터러시 2013-2016>에 이어 6년만에 나온 것으로, 기존과 달리 각계 전문가와 전국 순회 워크숍을 바탕으로 완성했다는 특징이 있다. 정책안은 1년 가까운 현장 조사와 의견 수렴을 거쳐 핀란드 미디어교육의 특징과 지향점, 또 목표와 과제를 정리했다. 이와 함께 교육과 문화뿐만 아니라 전 정부부처 및 사회 각계에서 누가 어떤 미디어교육을 실천하는지를 함께 담았다. 핀란드 교육문화부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는 이 정책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또 평가해 개선할 계획을 세웠다. 앞서 소개한 사례는 정책이라기보다는 개별 기관 단위의 활동으로, 이런 활동이 어떤 구조에서 이뤄지는지를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5]

 

핀란드 미디어교육 정책안

 

핀란드의 미디어교육 정책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을 고르자면, 협업을 바탕으로한 정부부처-민간영역 간의 공동 활동이 많다는 점, 그리고 공교육 기관을 중심으로 여러 분야에서 미디어 교육 활동을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정책 현황 조사에 서로 다른 부문의 41개 기관 전문가가 참여했고, 민간 자격으로도 58명이 설문조사에 응답했다. 정책안 초안이 나왔을 때 71개 기관이 의견을 등록했다.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문화, 영상, 청소년센터, 아동권리 보호기관, 저작권 협회, 종교단체, 작가협회, 출판인협회, 언론사 협력체 등이 참여했다. 핀란드의 적은 인구와 도시 규모 등을 감안하면 기관과 단체 수십 곳이 논의와 실천에 적극 참여하는 점, 그리고 여러 주체가 다양한 관점에서 의견을 보탤 수 있는 정책 개발 과정도 참고할 만한 특징이다.

 

최근 한국의 여러 정부 부처는 디지털 미디어 소통 강화 방안을 합동으로 발표했다. 다양한 중장기 계획이 많이 담겨 있지만, 이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시민 사회 영역과의 협력이 무척 중요해 보인다. 어느 나라의 사례든지 그 일부 내용이 한국에도 적합한지를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약간의 자극과 새로운 관점을 참고해볼 수는 있을 듯하다. 뉴스레터로 전하는 핀란드 미디어교육도 좋지만, 한국의 미디어교육 사례를 소개하는 일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1] 학교 영화 주간 웹사이트 https://www.elokuvaviikko.fi/ajankohtaista/

[2] 씨네에드 웹사이트 https://www.cined.eu/fi

[3] 유튜브에서 생중계한 디스코드 활용 청소년 활동 방법 세미나를 참고해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qBdYZpAcQw

[4] 청소년 활동가 대상 미디어교육 캠프 SOMECAMP 2020 https://www.verke.org/somecamp/

[5] <핀란드의 미디어 리터러시: 국가 미디어교육 정책>은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한국어로 번역했다. https://url.kr/uI74P1

 

출처: [해외사례 이모저모_09] 시민에게 가까워지려는 협력: 핀란드 미디어 교육 -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krmedia.org) (2020. 10. 27)

 

URL:

http://www.krmedia.org/pages/page_131.php?act_module=board_board_2&act_type=read&sn=10534&page=1